水鏡칼럼- ‘영국 식민지’ 미국은 어떻게 세계 초강대국이 됐나

이현석 기자 / 기사승인 : 2026-08-02 04: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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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탄생과 역사적 배경 그리고 미래는?

                                           

                               

     

[부자동네타임즈=이현석 기자] 미국이 건국 250주년을 맞았다. 독립기념일인 7월4일 워싱턴 D.C.의 밤하늘을 수놓은 불꽃놀이는 한 나라의 역사를 기념하는 화려한 장면이었다.
다만 건국 250주년 관련 행사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민주주의, 사회 통합, 개척정신 같은 미국 본연의 가치와 거리가 멀다는 비판도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 기념일을 자신의 치적을 홍보하고 야당을 비판할 용도로만 쓴다는 것이었다.

NBC방송은 미국의 정치적 분열이 심해지면서 일부 시민은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로 오해 받을까봐 성조기를 걸지 않고, 저항의 상징으로 국기를 거꾸로 거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이오와주의 한 주민은 “트럼프가 모든 것을 뒤집어 놓았으니 국기가 거꾸로 게양되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기업에서 근무하는 한 40대 교포는 “트럼프에게 반대한다는 의미로 4일에 성조기 대신 주 깃발을 걸겠다는 사람들도 있다”고도 했다.

          

7월4일 밤 워싱턴 기념탑 뒤편으로 미국 건국 250주년을 기념하는 불꽃놀이가 열리고 있다 /EPA 연합뉴스


최근 갤럽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7%는 ‘건국의 아버지들이 현재의 미국을 본다면 실망할 것’이라고 답했다. 2001년의 42%보다 35%포인트 급증했다. 마리스트대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2%가 “미국 민주주의에 심각한 위협이 존재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세계가 1776년을 인류사의 거대한 분기점으로 기억하는 이유는 미국의 탄생 때문만은 아니다. 1776년은 이미 진행되던 정치·경제·기술의 거대한 변화가 하나의 역사적 전환점을 이룬 해였고, 근대 세계 질서의 설계도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은 권력의 정당성이 군주가 아닌 국민에게 있음을 천명했다. 같은 해 출간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시장과 분업이 부(富)를 창출한다는 경제 원리를 체계화했다. 영국에서 무르익던 산업혁명은 증기기관을 앞세워 생산 방식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었다. 정치는 권력을, 경제는 부를, 기술은 생산의 원리를 새롭게 정의하기 시작했다. 1776년은 이 세 흐름이 하나의 문명으로 결합한 상징적인 해였다.

 

■미국, 제도를 통해 혁신 이뤄내

 

사상과 기술만으로는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변화는 제도로 정착될 때 비로소 지속성을 얻는다. 미국은 독립선언의 정신을 헌법으로 구체화했고, 권력분립과 법치를 통해 자유가 안정적으로 보장되는 국가운영 시스템을 구축했다.

 

1790년 제정된 미국의 특허법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은 발명을 우연한 영감이 아니라 법이 보호하는 재산권으로 인정했다. 아이디어가 재산이 되자 발명은 투자와 창업으로 이어졌고, 혁신은 개인의 재능을 넘어 국가 성장의 동력이 됐다. 혁신은 우연히 탄생할 수 있지만, 반복되는 혁신은 제도가 만든다. 자유와 경쟁, 법치와 재산권은 개인의 창의성을 사회 전체의 성장 동력으로 연결하는 정교한 장치가 됐다. 대학은 지식을 공급했고, 자본시장은 실패의 위험을 흡수했으며, 세계의 인재는 자연스럽게 미국으로 모여들었다. 미국은 또한 국내의 혁신 역량을 세계와 연결하는 개방적 질서를 통해 경쟁력을 확대했다. 자본과 기술, 인재가 국경을 넘어 모이는 환경은 미국의 혁신을 더욱 가속했다.

 

이 혁신의 메커니즘은 현대 기술혁명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인터넷은 미국 국방부 산하 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연구에서 출발했지만, 대학과 민간 기업, 벤처 생태계로 확산되며 오늘날 세계 경제의 대동맥이 됐다. 핵심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기술이 성장하고 확산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었다. 혁신 생태계는 그렇게 국가의 경쟁력으로 축적됐다.

 

훗날 경제학자들은 이를 ‘제도’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199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서 워싱턴대 교수 더글러스 노스는 국가의 성장을 결정하는 것은 자원의 양이 아니라 제도의 질이라고 보았다. 202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서 MIT 경제학 교수 대런 애쓰모글루 역시 장기적 번영은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된 사회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경쟁과 혁신에 참여할 수 있는 포용적 제도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했다.

 

지난 250년 미국의 역사는 이를 입증해 왔다. 증기기관에서 철도와 전기, 컴퓨터와 인터넷, 그리고 오늘의 인공지능(AI)에 이르기까지 혁신의 주역은 끊임없이 바뀌었다. 그러나 그 변화를 가능하게 한 기반은 변하지 않았다. 헌법이 보장한 자유와 법치, 특허제도와 자본시장, 그리고 개방성이 혁신을 지속시키는 힘이 됐다. 미국이 세계를 선도한 이유는 특정 기술을 먼저 개발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기술이 반복적으로 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1776년 미국이 인류에게 남긴 유산은 독립선언문 한장이 아니었다. 자유를 제도로 보장하고, 제도를 혁신의 구조로 연결한 국가 운영의 원리였다. 지난 250년 세계는 그 원리를 중심으로 움직여 왔다. 앞으로의 250년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초강대국 미국의 형성과 변천사

 

그러면 세계 초강대국 미국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인류의 역사를 바꾸었는가. 2022년 3월15일 방송된 tvN ‘벌거벗은 세계사’에는 전남대 사학과 김봉중 교수가 강연자로 등장해 '미국의 시작'을 주제로 전했다. 내용을 요약했다.

먼저 미국의 국기인 성조기(Flag of the United States, 星條旗) 변천사가 소개됐다. 성조기의 의미는 별이 빛나는 국기(The Star-Spangled Banner)라는 뜻을 담고 있다. 하얀색과 빨간색의 13개 가로줄은 영국이 아메리카 대륙 식민지에 처음 세운 13개 주(州)를 상징한다. 좌측 상단의 박스에는 원래 영국 국기가 새겨져있었으나 처절한 독립전쟁을 거친 이후 각 주를 상징하는 별을 새겨넣게 됐다. 13개의 별로 시작했던 성조기는 영토가 넓어지면서 별의 숫자도 점점 늘어났고, 1959년 하와이가 50번째 주로 편입되면서 현재의 성조기가 완성됐다.

 

15~16세기 당시 유럽 열강들은 적극적으로 아메리카 대륙에 진출하여 식민지 건설 경쟁을 벌였다. 영국은 상대적으로 경쟁국들의 손길이 닿지않은 북아메리카에 주목했다. 하지만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정착민과 원주민의 갈등, 질병 유행 등 현지적응의 한계로 인하여 식민지 건설정책은 실패로 끝나는 듯했다.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tvN


1620년 영국 플리머스항에서 출항한 메이플라워호는 사실상 미국 역사의 본격적인 시작이 된다. 이 배에 탑승했던 인물들은 주로 청교도들이었다. 성경중심 신앙과 금욕주의, 반(反)가톨릭적 개혁 노선을 강조한 개신교 일파인 청교도들은 성공회를 국교로 하는 영국에서 탄압을 피하여 북아메리카로 이주하면서 오늘날 미국의 기원이 되었다.

이주민들이 장기간의 항해 동안 벌어진 내부 갈등을 봉합하는 과정에서 맺어진 '메이플라워 서약'은 자치적이고 평등한 성격을 추구하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오늘날에도 미국 최초의 자치 헌법으로 평가받는다.
 

험난한 항해를 거쳐 신대륙에 무사히 도착한 청교도들은 불과 53명. 이들은 언덕 위의 도시(City upon a hill)이라는 슬로건을 만들어냈다. 모두가 우러러보는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해 식민지로 부름받은 사람들이라는 신념과 자부심을 드러낸 것이 미국 건국 정신의 기원이 됐다.

초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던 정착민들은 차츰 자신들의 공동체를 구축하고 땅을 개척하여 확대해나가면서 자리를 잡아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원주민들과의 갈등은 피할 수 없었다. 초기 청교도들은 원주민들에게 도움을 얻거나 동맹을 맺으면서 우호적으로 교류하기도 했지만, 세력이 커지면서 충돌은 피할 수 없었다.

청교도가 중심이 된 이주민은 주로 원주민들을 개종시키려고 했지만, 원주민들은 자신들만의 언어, 문화, 전통을 포기할 수 없었다. 토지에 대한 개념도 전혀 달랐다. 유럽 정착민들에게 땅이 삶의 터전이자 소유물이라면, 원주민에게 땅은 소유할 수 없고 자연에서 빌려 사용한다는 개념에 가까웠다. 이는 결국 정착민과 원주민 간 피비린내나는 전쟁의 서막이 됐다.

전쟁으로 원주민을 몰아낸 영국 이주민들은 북아메리카에 13개의 완성형 식민지를 건설했다. 초기에 본국인 영국은 지역마다 총독을 파견하기는 했지만 적극적으로 간섭하지 않고 직선의회를 통한 자치를 보장했다. 뉴욕, 펜실베니아 등 유명한 미국의 지명들은 모두 영국 귀족들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불안한 미래에 고뇌하던 미국인들

 

영국은 아메리카에서 식민지 건설 경쟁을 벌이던 네덜란드, 스페인, 프랑스 등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고, 식민지인들은 어쩔 수 없는 전쟁에 휘말려야 했다. 또한 원주민인 인디언은 정착과 농지 확보가 주목표였던 영국에 비하여 교역을 중시한 프랑스와 더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했다. 유럽에서 시작된 열강들의 전쟁은 북아메리카 대륙까지 번졌고 영국과 프랑스-인디언 동맹간의 '7년 전쟁(1756년~1763년)'으로 이어졌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광활한 영토를 손에 넣게 된다.


하지만 전쟁에서 막대한 비용을 소모한 영국은 그 부담을 메우기 위하여 아메리카 식민지에 눈을 돌리게 되었고, 설탕법, 인지세법, 타운센드법 등을 둘러싼 세금 전쟁은 미국 독립운동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본국의 불합리한 행동에 식민지들의 불만은 점점 고조되어갔고 저항운동으로 번졌다. 아메리카는 '대표없이 과세없다'는 슬로건을 제시하여 식민지 대표자가 없는 영국 의회에서 세금을 부과하는 데 이의를 제기했다.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tvN


영국과 아메리카 식민지의 계속된 갈등은 결국 1773년 '보스턴 차(茶)' 사건을 계기로 폭발한다. 인디언 복장으로 위장한 식민지 상민들이 차(茶)세법에 항의하여 영국 본토로부터의 차 수입을 저지하기 위하여 영국 선박을 습격, 당시 사치품이었던 차 상자들을 바다에 폐기한 사건이다. 큰 충격을 받은 영국 의회는 보복으로 강제법을 도입하여 보스턴 지역을 다른 식민지로부터 고립시키는 강경책에 나선다.


하지만 자유가 박탈 당할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낀 식민지인들은 오히려 보스턴과 연대하여 영국 정부에 저항했다. 식민지인들은 협의회를 통해 선출된 13개 식민지 대표 55인으로 대륙회의를 개최하고 식민지의 자치권 보장과 강제법 철회 등을 요구했다. 당시 대표로 참석한 조지 워싱턴, 존 애덤스 등은 훗날 미국의 대통령이 되며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게 된다.

영국은 대륙회의의 요구를 반란으로 받아들이고 식민지는 결국 피할 수 없는 독립전쟁을 시작했다. 1775년 4월19일 렉싱턴에서 벌어진 식민지 민병대(미니트맨)와 영국 정규군간의 전투로 독립전쟁의 막이 올랐다. 민병대는 영국군에 비해 전투경험과 훈련에서 열세였지만 지형지물을 확인한 게릴라전으로 영국군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식민지인들은 1775년 5월 2차 대륙회의를 열고 체계적인 독립군을 창설하고 워싱턴을 초대사령관으로 선출했다. 당시 식민지 내부에서도 독립파와 독립 반대파로 의견이 갈렸다. 독립 반대파들은 영국의 보호 없이 주변 강대국이나 인디언들의 위협에 버틸 수 있겠냐는 두려움을 내세웠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해온 토마스 페인은 저서 『상식』에서 영국 왕 조지 3세를 짐승으로 비유하며 군주정의 폐해와 한계를 지적했다. '계몽주의 사상에 입각한 자유와 평등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완전한 미국의 독립이 곧 상식'이라는 페인의 파격적인 주장은, 불안한 미래에 고뇌하던 미국인들에게 독립에 대한 분명한 논리와 확신을 심어줬다.

 

■영국군을 이긴 미국·프랑스 연합군

 

1776년 7월4일 필라델피아에 식민지 대표들이 모여서 역사적인 독립선언문을 발표한다. 미국 독립의 중요한 슬로건은 생명·자유·행복의 추구였고 그중에서도 핵심은 자유였다. 미국인 타일러는 "별개의 주라는 인식이 강했던 13개 주가 독립선언문을 기반으로 하나의 국가로서 공동체 의식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 엄청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토마스 제퍼슨이 작성한 독립선언문에서 행복은 원래 자산(Property)이었지만, 하층민들의 반발과 오해를 우려하여 포괄적 의미의 행복으로 바꿨다는 뒷이야기도 있다. 내 재산을 힘있는 이들에게 빼앗기지 않고 지키는 것이야말로 행복을 추구할 권리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독립선언문에 담고있는 가치가 이념과 현실, 실용과 경제적인 의미까지 아우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tvN


미국은 독립전쟁에서 막강한 영국군을 상대로 초반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차츰 전세(戰勢)를 역전시켜나갔다. 독립군은 1777년 세러토가 전투에서 숲지대라는 지형과 저격수들을 활용하여 영국군 지휘관들을 집중 겨냥하는 전술로 대승을 거뒀고 전쟁의 승기를 잡았다.

또한 미국은 영국의 숙적이었던 프랑스를 아군으로 끌어들였다. 당시 미국이 프랑스로부터 지원받은 규모는 약 13억 리브르, 현대로 환산하면 7조 6300억 원에 이른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의 대규모 지원이 자국의 재정 고갈로 인한 과도한 세금징수로 인헤 민심 이반을 부르며 프랑스 대혁명의 도화선으로 이어졌다.

미국과 프랑스의 연합군은 영국군을 요크 타운에서 포위하며 항복을 받아냈다.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영국은 결국 평화 협상에 돌입했고 1783년 9월 프랑스 파리에서 마침내 미국의 독립을 인정하는 강화조약을 체결했다. 미국이 비로소 하나의 국가로서 정식으로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프랑스는 미국과 이후로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고 독립 100주년에는 기념으로 너무나 유명한 ‘자유의 여신상’을 제작했다. 7개의 대양과 대륙을 상징하는 왕관을 쓰고 오른손에 자유의 횃불, 왼손에는 독립선언문을 들고 있는 모습은 미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아이콘 중 하나가 됐다.

김봉주 교수는 파란만장한 미국의 역사를 "자부심과 오만 사이의 아슬아슬한 이중주"라고 정의했다. 신대륙에서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헤 부름 받은 사람이라는 자부심, 하지만 그 자부심은 아차하는 사이에 종이 한 장 차이의 오만으로 변질되기 쉽다. 오늘날 초강대국 미국을 만든 이면에는 원주민에 대한 침략과 학살, 강대국간의 영토 분쟁, 본국과의 독립전쟁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피의 역사를 넘어야 했던 미국의 어두운 이면을 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

 

■미국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 흔들리는 제국의 초상

 

KBS의 24년 차 기자, 워싱턴 특파원을 지낸 이정민은 저서 『미국은 어떻게 무너지는가』에서 2020년대에 들어선 후 급격하게 진행 중인 미국의 패권 약화와 그로 인해 요동치는 세계 질서를 진단한다. 미국은 더 이상 우리가 알던 과거의 미국이 아니다.

 

미국은 이제 어떤 전쟁에서도 손쉬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으며, 그렇기에 과거처럼 ‘세계의 경찰’ 노릇을 자처하면서 서구 자유민주주의의 도덕적 규범과 세계 무역 질서를 전파하지도 못한다. 대신 노골적으로 미국 우선주의, 배타적인 자국 중심주의를 내세우는 데 거리낌이 없다. 

미국은 이미 오랜 동맹들을 철저히 국익과 비용의 잣대로 평가하는 ‘거래적 관계’로 재편했다.

 

왜 이런 변화가 나타났는가? 문제는 트럼프가 아니다. 트럼프를 두 번이나 선택한 미국 국민이 이 변화를 이끌었다. 그러므로 ‘흔들리는 제국의 초상’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선 트럼프의 기저에 깔린 미국의 근본적인 대전환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저자는 ‘천조국(千兆國)’이라 불리는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력 이면에 숨겨진 구조적 취약성을 실증적으로 분석한다. 특히 중국이 물량과 속도를 앞세워 세계 패권에 빠르게 도전하는 흐름은 미국의 내부적 갈등, 균열과 맞물리면서 미국 시스템 자체를 변화시켰다. 이렇게 미국이 느끼는 위기감은 전방위적인 고율 관세와 에너지 무기화, AI와 빅테크에 대한 의존, 그리고 베네수엘라 및 이란에 대한 공격적인 군사 행동으로 표출되고 있다.

 

워싱턴 특파원 시기에 미국의 국제적 현안을 폭넓게 조망하면서 아프가니스탄 철군,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 전쟁의 발발을 지켜봤던 이정민은 이 책에서 자신만의 정밀한 ‘미국론’을 완성한다. 매일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미국 안팎의 모든 문제는 사실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미국이라는 천 개의 프리즘’은 이정민의 통찰 앞에서 하나의 궤로 날카롭게 꿰뚫린다.

 

지난 70년간 한미(韓美) 동맹의 근간 위에서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은 이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가 이러한 미국의 행보를 근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미국이 1등 국가를 내려놓을지 그러지 않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 힘이 신속하게 빠지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와 함께 동맹의 성격도 이미 변화하기 시작했다. 지난 70년간 가치와 신뢰를 공유하던 동맹의 정신은 이익과 비용 중심의 ‘거래적 관계’로 바뀌고 있다. 굳건한 한미 동맹을 외교와 안보의 근간으로 삼아온 한국에 이 변화는 중대한 도전이자 거대한 위협이다. 앞서 살펴본 미국 사회의 변화들이 향후 동맹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 냉정하게 분석하고, 새로 짜일 동맹의 판 위에서 우리에게 최대한 유리한 방향으로 전략을 재설계해야 할 절박한 시점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미국의 변화가 한미 관계를 어떻게 바꿔나갈 것이고, 새로 짜일 판 위에서 우리는 어떤 전략으로 미국을 상대해야 할지 숙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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