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동네타임즈=조영재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국민의힘 의원들과 골프를 치면서 개헌에 관한 대화를 나눈 것을 두고 각종 해석이 나오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 대통령과 골프 라운딩을 하거나 제안을 받은 국민의힘 의원 대부분이 당 개헌특위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야권에선 이 대통령의 골프 회동이 애초 ‘개헌 실행’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려면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국민의힘 의원 109명 중 10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개헌을 ‘국정 과제 1호’로 내세운 이 대통령이 골프 회동을 통해 직접 야당 의원 설득에 나선 것이란 얘기다.

주호영 국회 부의장, 국민의힘 김태호 의원, 신성범 의원, 최형두 의원. 연합뉴스
국민의힘에선 주호영·박덕흠·김태호·신성범 의원 등이 이 대통령과 골프를 함께 쳤거나 치자는 제안을 받았다. 여기에 최형두 의원도 골프 회동 제안을 받은 것으로 8월14일 확인됐다. 최 의원은 다른 일정과 겹쳐 대통령과 골프를 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들 모두 개헌론자다.
주호영 의원은 재작년 비상계엄 사태가 벌어진 지 한 달쯤 지나 “1987년 체제가 만든 제왕적 대통령제는 유통 기한이 지난 것으로 판명됐다”며 개헌을 주장했다. 국민의힘이 비상대책위 체제로 전환된 뒤, 주 의원은 개헌특위 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개헌특위에 속한 현역 의원은 5명이었는데, 신성범·최형두 의원이 그 5명에 포함됐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월 국회 전반기 부의장이었던 주 의원, 후반기 부의장을 맡은 박덕흠 의원, 더불어민주당 출신 조정식 국회의장과 골프를 함께 쳤다. 그런데 이 회동에서 처음 청와대 제안을 받은 사람은 주 의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의 한 인사는 “주 의원이 대통령의 골프 제안을 받고 처음엔 거절했는데, 거듭 제안이 오자 대통령과 의장단이 함께 치는 형식을 제안한 것으로 안다”며 “형식은 국회 의장단과의 골프 회동이었지만, 대통령이 가장 만나고 싶었던 건 주 의원이었던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 이 대통령과 골프를 치며 ‘분권형 권력구조 개헌’을 제안했다고 밝힌 김태호 의원도 지난 2021년 대선 출마 때 1호 공약으로 ‘87년 체제 종식을 위한 개헌’을 내세웠을 정도로 강한 개헌론자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야당 의원과 골프 회동을 통해 야당에서도 개헌 추진 움직임을 끌어내 보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일각에선 대통령이 골프 회동을 계기로 야당 중진, 특히 개헌에 적극적인 의원들을 접촉한 것을 두고 “국민의힘 일부 세력까지 안고 새로운 정계 개편에 나서려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실제 이 대통령은 지난 7월 문재인 전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끊임없이 외연을 확장하고 구조적 다수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당시 여야 모두에서 “중도·보수까지 품는 이재명표 대연정 시동을 거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김영우 전 국민의힘 의원도 이날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야당을 끌어안는 대통령의 ‘새 정치연합’ 구상 가능성을 제기하며 “야당 의원들을 국정에 참여시키는 대연정 냄새가 난다”며 “좋게만은 안 보인다. 국민의힘을 흔들 정치적 카드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대통령의 진짜 의도는 개헌이 아닌 ‘사법리스크 해소’ 등 다른 데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여야는 모두 청와대가 의원들을 개별 접촉해 골프 라운딩을 제안한 것에 매우 불편한 분위기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대통령과 야당이 소통할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만나고 모이는 것만이 아니라 해결해 가는 것”이라며 “국회에서 저희 이야기 하나도 안 들어주시면서 골프만 치시면 뭐 하느냐”고 했다.
범여권의 조국혁신당도 “내란 청산이 진행 중인데, 대통령의 골프 회동은 깊은 실망을 안겨준다”고 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도 “지금 친명·친청계 갈등이 심해져 전당대회 이후 분당 얘기까지 나오는데 대통령의 속내를 진짜 모르겠다”고 했다.
여권 내에서는 전당대회가 끝나면 민주당이 본격적으로 개헌에 당력을 집중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왔다. 대통령과 가까운 김민석 후보도 이날 유튜브 방송에서 “대통령이 말한 연임이든 중임이든, 하여간 두 번은 할 수 있게 해서 안정성을 갖게 하자는 것에 동의한다”며 개헌 추진에 힘을 실었다. 김 후보는 “(개헌이 된다면) 본인 임기를 조금 줄일 수 있다는 얘기는 이미 대선 전에도 여러 번 저에게 했다”고 말했다.
"개헌 논의는 국회가"…李는 공 넘겼지만 여야는 계속 대치중
이재명 대통령은 14일 X를 통해 “실제 개헌한다면 그 구체적 내용은 여야 합의로 국회에서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개헌 논의는 전적으로 국회에 맡겨야 한다고 했다.
청와대는 “정부의 개헌안을 만들기 보다는 국회에서 하는 게 맞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친명계 핵심인 조정식 국회의장이 지난 7월 취임 기자회견에서 “현직 대통령 연임은 국민 선택의 문제”라며 연임 가능성을 열어놓는 듯한 발언을 한 뒤 국민의힘이 “개헌 논의에 임할 수 없다”고 하면서 향후 여야 간 개헌 논의는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청와대 관계자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개헌은 국회의 200석 이상 동의가 필요한 사안이므로, 국회에서 논의되고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지금의 민주당 의석으로는 어렵고 국민의힘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개헌은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 1호’다.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고 임기 초 국정기획위원회가 4년 연임제 및 결선투표제 도입 등을 포함한 개헌안을 발표한 바 있다.
그 이후 이 대통령은 지난 5월 국무회의에서 “동시에 전면 개헌을 하기는 부담이 크다. 실용적 태도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비상계엄 요건 강화,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 등 여야 합의가 가능한 사안부터 순차적으로 개헌하자는 입장을 밝혔다. 당시 국회의장이던 우원식 전 의장은 이 같은 ‘원포인트’ 개헌안을 추진하려 했지만 여야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조정식 의장은 오는 9월 정기국회 개회 직후 국회의장 직속 헌법개정자문위원회를 꾸리고, 국회 개헌특위를 구성해 내년 본격적인 논의를 거쳐 개헌안을 최종 확정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2028년 4월 23대 총선에서 개헌안 국민투표를 치르자는 것이다.
조 의장은 ‘4년 중임 대통령제’ 등 권력구조 개헌 방안 역시 개헌안에 포함시키자는 입장이다. 국회의장실 관계자는 “구체적 시기나 절차에 관해서는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면서 “향후 여야 협의를 바탕으로 정리될 것”이라고 했다.
다만 국민의힘은 개헌은 필요하지만 “대통령이 연임은 하지 않겠다고 직접 못박아야만 논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입장이다. 앞서 조 의장은 지난달 28일 취임 첫 기자간담회에서 현직 대통령의 연임 개헌 가능성을 언급하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이 됐었다. 이후 청와대 참모들이 “이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의 연임은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셨다”고 진화했지만 국민의힘은 개헌 논의가 사실상 권력 연장 의도라는 의구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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